골때리는 리뷰/중,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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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술의 임무>, 배명훈(2018) "서술자의 존재증명"골때리는 리뷰/중,단편소설 2020. 7. 3. 13:53
- 서술하는 자들의 존재증명 동일 작가의 다른 작품인 와 연결된 부분이 많은 작품이 아닐까. 에 등장하는 돌멩이 모양의 ‘존재’는 천재 과학자 선우정의 바람에 따라 지구 공전궤도 바깥쪽으로 쏘아 올려진다. ‘존재’는 지구 공전궤도 바깥쪽을 향해 날아가다가 ‘생각’에 빠지게 되는데, ‘나는 의심한다.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 의심한다. 존재한다.’를 무한히 반복하다 결국 존재의 논리에 충돌하고 만다. 그리고 스스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우주적인 폭발을 일으킴으로써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에서는 어떤가. ‘서술자’라 불리는 화자는 “버림받을 순간에만” 글을 쓰도록 설정되어 있다. 또한 이 서술자는 “학습기계가 아니고 기계학습”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식한다. 의 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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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진기행>, 김승옥(1960) "그에게 묻는다"골때리는 리뷰/중,단편소설 2020. 6. 8. 04:00
김승옥에게 묻는다, “자기세계에 집착하는 이유는…” 김승옥은 한국의 다자이 오사무가 아닐까 싶다. 어쩜 그리도 힘이 없는 사람들일까. 거의 인간 실격 전의 상황에 놓인 것처럼 피폐한 내면을 가진 것 같다. 적어도 김승옥씨는 자살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종교에 귀의해 삶을 영위하고 계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허무에 가득찬 대작들을 써낸 작가가 겨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사실상 절필 선언을 하다니. 어쩌면 그에겐 하나님의 목소리가 구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김승옥은 그렇게 많은 소설을 남기진 않았지만(아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작품이 몇 있다) 소설을 쓰기 위한 힘이 있었다. 그 힘의 원동력이 비록 내면의 공허에서 차오르는 것일지라도 확실한 한 방이 있었다. 또한 소설 의 배경이 되는 무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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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 론리니스>, 윤이형(2006) "크로스페이더"골때리는 리뷰/중,단편소설 2020. 6. 6. 04:00
디제잉은 과연 예술일까? 남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음악을 트는 것에 불과한데 말이다. "턴테이블 앞에 서서 아무리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해도 거기엔 오리지널리티라고 부를 만한 게 별로 없"다며 현직 DJ 중 한 명은 증언한다. 그러나 그 DJ는 말한다. "하지만 오리지널리티가 반드시 선(善)은 아니라고, 뻔한 음악이라도 뻔하지 않게 튼다면 완전히 다른 음악이 된다"고. 이번에 소개할 소설은 다. 저번에 이은 윤이형의 소설이다. 일상에서 무뎌지며 잊혀져가지만 잊고 싶지는 않은 존재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다른 소설가와는 좀 다르다. - 누구도 원하는 대로 하나의 음악만 들으면서 살아갈 순 없어요. 곡이 지루하게 느껴지면 반대쪽으로 크로스페이더를 밀어붙여요. 그런다고 이쪽의 음악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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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을 위한 왈츠>, 윤이형(2006) "트라이앵글"골때리는 리뷰/중,단편소설 2020. 6. 5. 04:00
이번 소설을 다 읽은 후에는 삼각형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삼각형은 정삼각형처럼 안정적이지도 않다. 둔각삼각형처럼 한 꼭짓점이 두 꼭짓점보다 멀다. 이 꼭짓점은 꼭 탈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꼭짓점은 치유가 될 수 있고, 상처나 절망이 될 수도 있다. 이번에 소개할 윤이형의 는 삼위일체, 삼각관계, 삼위일체, 삼부작처럼... 미묘한 숫자 3의 스텝을 보여준다. "셋이라는 건, 결국 모두가 혼자라는 걸 깨닫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수 같아. 밤중에 혼자 깨어 혼자여서 느끼는 외로움은 어린애의 외로움 같은 거야. 둘이 있어도 외롭다면 그건 처참하지만, 완전한 외로움은 아니지. 둘은 어쨌든 가끔이나마 함께 잠들 수 있으니까. 셋이 되어 나머지 둘이 이미 잠들어 있는 걸 보면서 정말로, 정말로 혼자라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