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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유년의 뜰>, 오정희(1980) "판도라의 새싹"
    골때리는 리뷰/중,단편소설 2020. 6. 3. 04:00

    <유년의 뜰>, 오정희

     <유년의 뜰>은 일곱 살 소녀 노랑눈의 세계를 다룬 이야기다. 빛과 감각으로 환기되는 이미지의 모자이크 사이에서 노랑눈은 계속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며 서러워한다. 그것은 전쟁이 낳은 비극이다. 징집되어 전쟁터로 끌려간 아버지와 가장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술집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오빠의 폭력 등 비정상적인 삶은 어린 노랑눈을 황폐하게 만든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노랑눈은 한계에 다다르며 도벽과 과식을 통해 뒤틀림을 표출한다. 그럼에도 고통에 자유롭지 못하고 심지어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홀대받는다. 그렇게 겉도는 노랑눈의 삶은 무섭도록 차갑고 섬뜩하지만 안타깝다.

     

     <유년의 뜰>엔 죽음의 키워드가 많다. 막내 동생의 죽음이 암시되고, 전쟁에 끌려간 아버지 역시 생사를 알 수 없다. 그것은 음험하게소설 곳곳에 피어오른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보면 내 몸이 하나씩 갈라지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 아무래도 게슈탈트 붕괴 현상을 겪는 것 같다. <유년의 뜰>은 파괴의 현장이다. 거대한 운석이 아니라, 여러 개의 빈 총탄을 맞는 느낌이다. 죽지는 않지만 고통스럽게, 삶을 옥죄고 있다. “노랑눈의 세계는 이렇게 멸망해간다. 일상 속에서, 천천히, 잔인하고 불운하게 죽은 사람들이 묻힌 땅으로 잠식되고 있다.

     

     그러나 그 순간에서도 땀 냄새와 같은 생명의 모습이 교차된다. 희망적이다. 그러나 이 희망을 희망이라 할 수 있을까. 내가 봤을 때, “노랑눈은 이미 좀비의 모습이다. 살아있는 걸까, 죽어있는 걸까. 삶도 죽음도 아닌 무언가가 노랑눈을 움직이고 있다. “모든 살아있는 우리들의 냄새는 음험하게 끓어올랐다라는 대목에서, “노랑눈은 타인의 삶을 관조하고 있다. “우리라고 표현하고는 있지만 이미 흩어진 가족의 유대감과 벌어진 노랑눈의 상처는 이미 정신을 완전히 장악했다. “노랑눈의 세계는 그렇게 멸망해버린 것이다.

     멸망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자연스레 멸망을 관조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멸망은 이미 자신의 내부로부터 진행되고 있는 것이니까.

     

     

    <20세기 문학의 절정>, 에디터 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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