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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DJ 론리니스>, 윤이형(2006) "크로스페이더"
    골때리는 리뷰/중,단편소설 2020. 6. 6. 04:00

     

     디제잉은 과연 예술일까? 남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음악을 트는 것에 불과한데 말이다.  "턴테이블 앞에 서서 아무리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해도 거기엔 오리지널리티라고 부를 만한 게 별로 없"다며 현직 DJ 중 한 명은 증언한다. 그러나 그 DJ는 말한다. "하지만 오리지널리티가 반드시 선(善)은 아니라고, 뻔한 음악이라도 뻔하지 않게 튼다면 완전히 다른 음악이 된다"고. 이번에 소개할 소설은 <DJ 론리니스>다. 저번에 이은 윤이형의 소설이다. 일상에서 무뎌지며 잊혀져가지만 잊고 싶지는 않은 존재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다른 소설가와는 좀 다르다.

     

     - 누구도 원하는 대로 하나의 음악만 들으면서 살아갈 순 없어요. 곡이 지루하게 느껴지면 반대쪽으로 크로스페이더를 밀어붙여요. 그런다고 이쪽의 음악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 <DJ 론리니스>

     

     크로스페이더crossfader는 비행긴 조종간처럼 생긴 DJ 컨트롤러다. 믹서mixer에 달린 크로스페이더를 가운데에서 천천히 데크 2 쪽으로 밀어붙이면, 스피커에서는 데커 1의 음악이 서서히 잦아들고 데크 2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믹서로 들어오는 음악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스피커로 빠져나가는 음악만 바꾸는 셈이다. 여전히 데크 1의 음악은 돌아가고 있고 DJ의 귀에도 음악이 들리지만 청중에게는 데크 2의 음악만 쏟아진다. 

     

     윤이형은 소설 속 관찰자인 DJ스카이하이와 3인칭 관찰 대상인 빛나를 통해 인생의 크로스페이더를 보여준다. DJ스카이하이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인물이다. 그러다 댄스 플로어에서 DJ를 보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한결같이 똑똑한 외과의사 같았다. "외과의사가 메스로 사람의 환부를 베고 혈관을 묶고 살갗을 봉합하듯 그들의 정교한 동작에는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는 말처럼, "믹서는 그대로 수술대였는데, 난 그 수술대 위에 올라가 눕고 싶었다. 거기 누워 그 손길에 몸을 맡기면, 20여 녀간 모든 열등감의 원천이 되어온 내 작은 몸을 뚫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새파랗고 깨끗한 에너지가 위로 아래로 쑥쑥 솟아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내게 가장 와닿았던 것은 이 구절이 아닌가 싶다.

     

     - 내겐 한 번도 재생되지 않고 낡아버린 레코드에 든 음악처럼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꿈들의 리스트밖에 없었다.

     

     빛나는 디제잉 학원을 운영하던 스카이하이의 수강생이다. 그녀는 뻔한 자신의 인생, 그러니까 28세의 "결혼 적령기, 피부 관리 좀 하고 신부 수업 좀 하고 적당한 남자 만나 시집가는 게 유일한 미래일 것 같아 보이는" 인물이다. 그녀는 DJ들이 나온 다큐를 본 후, 믿기로 했다. "리믹스와 샘플링과 재편집을 거치고 스크래치를 섞으면, 제 인생도 조금은 다른 음악이 될지 모른다고. 나만의 것이라 할 만한 건 별로 없지만 어쩌면 조금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 비트들이 아주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걸 당신은 알까. 매끈하게 다듬어진 정육면체일 때도 있고 가운데가 뚫린 납작한 사탕일 때도 있지. 얇고 날카로운 표창일 때도 있고 수수께끼로 가득찬 8번 당구공일 때도 있어. ("누군가"의 독백)

     

     <DJ 론리니스>를 통해 윤이형은 인생을 턴테이블에 비유한다. "데크 하나에는 꿈을 다른 하나에는 현실을 걸기 위해서. 달콤한 꿈에서 힘겨운 현실로, 다시 그것을 이겨내는 꿈으로, 그렇게 끝없이 믹스되면서 이어지는 게 바로 삶"이다, 라고.

     

     

     


     <인상 깊었던 한 문단>

     

     대한민국에 몇 개 되지도 않는 이런 디제잉 학원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거의가 취미로, 였다. 아주 가끔 대학에서 실용 음악을 전공하고 음악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도 찾아오지만 한두 달 맛만 보고 대부분 그만둔다. 이미 음악을 만드는 재능이 있는 그들에게 믹싱과 디제잉은 우동에 넣어 끓여 먹는 가쓰오부시 같은 것이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수강생의 8,90퍼센트는 클럽에서 음악을 틀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은 중고생이나 대학 1,2학년 사내애들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꿈은 그야말로 반짝하는 꿈일 뿐이다. 그 아이들은 그 꿈을 잠깐 동안 정성스럽게 문질러 닦다가, 어느 날 그 3만 배 정도의 광채를 지닌 다이아몬드가 우주 저편에서 날아와 머리에 퍽 박혀버렸다는 듯 형형한 눈빛을 하고는 교실로 도서관으로 돌아간다.

     

     

     

     

    ◆ <셋을 위한 왈츠>, 윤이형(2006) "트라이앵글"

     이번 소설을 다 읽은 후에는 삼각형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삼각형은 정삼각형처럼 안정적이지도 않다. 둔각삼각형처럼 한 꼭짓점이 두 꼭짓점보다 멀다. 이 꼭짓점은 꼭 탈주하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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