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 <무진기행>, 김승옥(1960) "그에게 묻는다"
    골때리는 리뷰/중,단편소설 2020. 6. 8. 04:00

    <무진기행>, 김승옥

    김승옥에게 묻는다, “자기세계에 집착하는 이유는

     

     김승옥은 한국의 다자이 오사무가 아닐까 싶다. 어쩜 그리도 힘이 없는 사람들일까. 거의 인간 실격 전의 상황에 놓인 것처럼 피폐한 내면을 가진 것 같다. 적어도 김승옥씨는 자살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종교에 귀의해 삶을 영위하고 계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허무에 가득찬 대작들을 써낸 작가가 겨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사실상 절필 선언을 하다니. 어쩌면 그에겐 하나님의 목소리가 구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김승옥은 그렇게 많은 소설을 남기진 않았지만(아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작품이 몇 있다) 소설을 쓰기 위한 힘이 있었다. 그 힘의 원동력이 비록 내면의 공허에서 차오르는 것일지라도 확실한 한 방이 있었다. 또한 소설 <무진기행>의 배경이 되는 무진처럼 안개에 둘러싸인 곳에서 뻗어 나오는 순수성과 청년성이 독자를 사로잡으므로 아직까지 청소년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사실 <생명연습>을 읽고 김승옥의 등단작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일단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모두들 이해 가능한 사연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공감도 되었다. 비록 이란 문제적 인물에게는 정이 가진 않았지만 그뿐이다. 소설적으로 모두 필요한 인물이었고, “자기세계에 대한 확고한 욕망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꼭 그렇게 자기세계에 대한 탐미적인 자세를 취해야 했을까. 김승옥에게 자기세계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김승옥이 소설 속에 내뿜은 그 청년성이 내게는 집착처럼 느껴졌다. 내가 밀고 있는 자기세계에 대한 믿음은 선천성에 있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확고한 자신만의 영지를 가지고 있다. 이는 부모로부터 전승된 영지이며, 외부 자극으로부터 라는 존재를 1차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성의 외곽 같은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땅을 개발시키고, 성을 축조하는 등 영지를 넓히고 지키려는 본능이 있다. 이는 삶에 대한 갈망이다. 자신의 영역이 침범되었다고 느껴질 때, 이 영지는 인간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대처한다. 먼저 딱딱한 대처, 몸을 웅크리고 적이 떠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유연한 대처, 상황에 맞게 전략을 짜고 적에 은근히 대항한다. 어쩌면 영지 안에 숨어있는 의 본질이 성문을 열고 직접 싸울 수도 있겠다. 나는 딱딱한 대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김승옥의 소설 속 인물이 대체로 그렇다. 자기세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하지만 지키기 위해 방어를 견고히 할 뿐, 나아가진 않는 것 같다. 죽음과 삶 이전에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생명이란 것에 작가는 초점을 맞춘다. 내가 생명연습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점에 있다. 우선 가 바라보는 타자들에 관한 시점이 섬세했다. 만화가 오 선생이나 친구 영수, 한 교수의 딸 등등 소설을 보는 동안 핀트가 약간씩 어긋나는 기행을 보이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의 자기세계인 것이다.

     

      -막연하나마 그 여자는 만약 자기에게 공포와 혼란이 없이 그것을 한다면 마침내 의식만이 남게 될 뿐이며 그리고 그것은 파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여자가 바라는 것은, 그렇다. 파멸이 아니라 구원이었다. 속임수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야행>에서, 현주는 온갖 거짓된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부다. 남편과의 관계를 숨긴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그에 관해 비관된 의식을 갖고 있는 현주는 어느 날 강간을 당하면서 내재되어 있던 일탈에 대한 욕망을 깨닫고 죄책감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낀다. 하지만 일상은 그대로 굴러갔으며, 허탈함과 무의식적인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도중, 현주는 회사에서 남편을 남편이라 부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남편은 그저 웃어넘기지만, 현주는 그에 대한 충격으로 파멸과 구원 그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헤매고 만다. 현주에게 자기세계란 무엇일까. 그는 무료한 일상의 한 부분에서 그것의 존재를 각성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소세계의 구축을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엔 방향을 잘못 잡아 우주의 먼지처럼 잠재된 욕망의 조각 사이를 떠돌게 된다.

     

     자기세계의 파멸과 구원은 한 끗 차이다. 외줄을 타는 광대처럼 인간은 늘 위태로운 지경이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챗바퀴 같은 일상을 살아간다. 김승옥은 일상 속의 구원과 파멸, 그리고 그 사이를 헤매고 갈등하는 인물을 그려내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세계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는 지금도 우리가 내는 소리에 반응하고 내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음파를 반사시키고 있다.

     

     

     

    By. 에디터 준

     

     

     

     

     

     <함께 읽으면 좋을 소설>

     

    ◆ <유년의 뜰>, 오정희(1980) "판도라의 새싹"

     <유년의 뜰>은 일곱 살 소녀 “노랑눈”의 세계를 다룬 이야기다. 빛과 감각으로 환기되는 “이미지”의 모자이크 사이에서 “노랑눈”은 계속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며 서러워�

    herringbonegoldshirts-0519.tistory.com

     

    댓글

Can you mess up?